신뢰는 사상 최저인데 소비는 안 꺾인다 — ‘K자형 소비’가 가린 진짜 위험

‘K자형 소비’를 보여주는 미국 식료품점 계산대 — 영수증과 장바구니, 신용카드

미국 소비자 신뢰지수는 사상 최저 수준입니다.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석 달 연속 줄었고, 물가는 다시 고개를 들었죠. 상식대로라면 지갑이 닫혀야 맞습니다. 그런데 5월 소매판매는 시장 예상을 보란 듯이 뛰어넘었습니다. 신뢰는 바닥인데 소비는 멀쩡한, 이 어긋남이 지금 미국 경제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저는 이 괴리가 ‘소비가 튼튼하다’는 안심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균열을 가린 장막에 가깝다고 봅니다. 무엇이 소비를 떠받치고 있고, 그 버팀목은 얼마나 갈까요. 저는 이 장면을 ‘K자형 소비’라는 틀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 깜짝 호조의 숫자들

5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9% 늘었습니다. 시장이 예상한 0.6%를 크게 웃돈 수치죠. 자동차·휘발유·외식처럼 변동성이 큰 항목을 뺀 ‘컨트롤 그룹’도 0.7% 올라, 예상치 0.4%를 넘어섰습니다. 이 컨트롤 그룹이 더 중요한 이유는 전체 소비의 흐름을 더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소매판매 자체는 전체 소비지출의 41% 남짓에 불과하거든요. 항목을 뜯어보면 결이 보입니다. 휘발유 판매가 3.4% 뛴 건 양보다 가격 탓이 큽니다. 반면 온라인(아마존 등) 1.5%, 가구 1%, 자동차 1.2%처럼 실수요로 볼 만한 항목도 같이 올랐고, 전자제품(-0.5%)과 외식(-0.1%)은 뒷걸음쳤습니다.

왜 안 꺾이나 — ‘K자형 소비’의 두 얼굴

그럼 신뢰가 바닥인데 어떻게 돈을 쓸까요. 핵심은 ‘소비자’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지금 미국 소비는 위아래가 갈라진 K자 모양입니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부가 불어난 고소득층은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엽니다. 반면 높은 물가와 더딘 소득에 눌린 중·저소득층은 겨우 현상 유지 중이죠. 더 들여다보면 불안한 대목이 있습니다. 5월 명목 소매판매가 0.9% 늘었지만 같은 달 소비자물가가 0.5% 올랐으니, 실질 증가분은 0.2% 안팎에 그칩니다. ‘많이 쓴 것처럼 보이는’ 숫자의 상당 부분이 실은 가격 상승이라는 뜻입니다.

버팀목은 영구적이지 않다

제가 주목하는 건 이 소비가 무엇으로 굴러가느냐입니다. 지금 가계는 소득이 늘어서가 아니라, 저축을 헐고 빚을 늘려 소비를 버티고 있습니다. 실질 가처분소득이 석 달 연속 줄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죠. 저축과 차입은 한계가 분명한 연료입니다. 저축률이 더 떨어지고 카드빚이 쌓이면, 어느 순간 소비는 소득 수준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표면의 ‘버티는 소비’가 든든해 보일수록, 그 아래에서 얇아지는 완충재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결국 지켜볼 것은 화려한 헤드라인 숫자가 아니라 그 ‘질’입니다. 명목과 실질의 격차, 저축률의 방향, 카드 연체율, 그리고 변동성을 걷어낸 컨트롤 그룹의 추세 — 이 네 가지가 같은 쪽을 가리키기 시작하면 그때가 진짜 변곡점입니다. 지금의 소비는 강하다기보다 버티는 쪽에 가깝습니다. 강함과 버팀을 구분하는 눈이, 다음 국면을 한발 먼저 읽게 해줄 거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비자 신뢰가 사상 최저인데 소비가 느는 게 가능한가요?
네. 심리(신뢰)와 실제 지출은 따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자산이 불어난 고소득층이 소비를 끌어올리면, 심리가 나빠도 총소비는 버틸 수 있습니다.

Q. 그럼 미국 경제가 튼튼하다는 뜻 아닌가요?
단정하긴 이릅니다. 명목 증가의 상당 부분이 가격 상승이고, 소비가 저축 감소와 차입 증가로 굴러간다면 그 힘은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Q. 투자자는 무엇을 봐야 하나요?
저축률, 카드 연체율, 실질 소비 추세, 컨트롤 그룹 흐름입니다. 다만 이는 일반적 관점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판단은 아닙니다.

관련해서, 같은 연준·금리 흐름은 이전 글 연준이 ‘인하’가 아니라 ‘인상’을 가격에 넣기 시작했다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번 5월 소매판매 수치는 ING의 5월 소매판매 분석을 참고했습니다.

※ 이 글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용 개인적 분석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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