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으면 원화가 싸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비해 싼 것일까. 환율에는 주가처럼 명확한 적정가가 없습니다. 그래도 기준선을 잡아보려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중 가장 직관적인 것이 구매력평가, 줄여서 PPP다.
구매력평가(PPP)란 무엇인가
구매력평가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같은 물건은 어디서 사든 같은 값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서울에서 1만 원인 물건이 뉴욕에서 10달러라면, 적정 환율은 1달러당 1,000원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를 한 나라 전체의 소비 바구니로 확장해 계산한 것이 PPP 환율입니다.
이 개념을 가장 쉽게 보여준 사례가 빅맥지수입니다. 각국 맥도날드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해 비교하면 통화가 고평가인지 저평가인지 한눈에 보입니다. 물론 재미로 만든 지표이지만, PPP가 무엇을 재려는 것인지 설명하는 데는 이만한 예가 없습니다.
어떻게 작동하는가
실제 시장 환율은 PPP에서 상당히 오래, 상당히 크게 벗어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집니다. 우선 이발이나 병원 진료처럼 국경을 넘어 거래할 수 없는 서비스가 물가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런 항목의 가격 차이는 환율로 조정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단기 환율은 무역이 아니라 자본 이동이 결정합니다. 하루 외환거래량은 세계 무역액을 압도합니다. 금리 차이를 노린 자금, 위험 회피 심리, 중앙은행 정책 기대가 무역수지보다 훨씬 빠르게 환율을 움직입니다.
또 하나 알아둘 개념이 발라사-사무엘슨 효과입니다. 생산성이 빠르게 오르는 나라는 임금이 오르고, 그 임금이 비교역재 가격까지 밀어올려 물가 수준 자체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소득이 높은 나라의 통화는 구조적으로 PPP보다 고평가로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 비교로 저평가라고 결론 내리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PPP는 장기 기준선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실증 연구에서 시장 환율은 PPP로 수렴하되 그 속도가 매우 느린 것으로 나타납니다. 벌어진 격차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수년이 걸린다는 추정이 일반적입니다.
흔한 오해
PPP보다 환율이 높으면 곧 떨어집니다. 방향은 시사하지만 시점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저평가 상태가 5년 넘게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빅맥지수가 통화 가치의 정답입니다. 빅맥 가격에는 임대료, 인건비, 현지 경쟁 강도 같은 비교역 요소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참고 자료 이상으로 쓰기는 어렵습니다.
PPP 환율은 하나뿐입니다. 소비자물가 기준, 생산자물가 기준, OECD와 세계은행 추정치가 각각 다릅니다. 기준을 바꾸면 적정 환율 수치도 크게 달라집니다.
한국 투자자에게 주는 함의
PPP보다 실무에서 더 자주 쓰이는 것은 실질실효환율입니다.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와의 환율을 교역 비중으로 가중하고 물가 차이까지 반영한 지표로, 국제결제은행(BIS)이 매월 발표합니다.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이 장기 평균보다 크게 낮다면, 명목 환율 숫자와 별개로 원화가 구조적으로 싸진 상태라고 볼 근거가 됩니다.
해외 자산 비중을 조절할 때 이 관점이 쓸모 있습니다. 원화가 역사적 저평가 구간에 있을 때 달러 자산을 추가로 담는 것은 환율 측면에서 불리한 진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한 구간이라면 해외 자산의 환 비용 부담이 낮아집니다.
다만 환율은 국내 요인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달러 자체의 강약, 금리 차, 반도체 경기 같은 변수와 함께 봐야 합니다. PPP는 지금 위치를 확인하는 좌표이지 매매 신호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화의 PPP 적정 환율은 얼마인가요?
OECD 추정 기준으로 대체로 900원대 후반에서 1,100원대 사이 값이 제시되지만 기준연도와 계산 방식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절대 수치보다 시장 환율과의 괴리가 벌어지는지 좁혀지는지를 보는 편이 유용합니다.
Q. PPP로 국가 간 경제 규모를 비교하는 것은 왜인가요?
시장 환율로 환산하면 물가가 싼 나라의 실제 생활 수준이 과소평가되기 때문입니다. IMF가 PPP 기준 GDP를 함께 발표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원자료: BIS — 실질실효환율(Effective Exchange Rate) 통계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이나 금융상품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